거제시 행정의 발자취: 통합의 아픔에서 미래 도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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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시 행정의 발자취: 통합의 아픔에서 미래 도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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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거제 모바일 사이트, 거제시, 브랜드 가치상승 위한 전략 수립

  1. 거제시 행정구역 변천사
  2. 거제 통영군 예속 39년
  3. 거제 장목 관광단지 개발
  4. 거제 해금강 관광 개발
  5. 거제시 청마기념관 유치환
  6. 거제 조선시대 조세 제도
  7. 거제 향약 제도 마을 공동체
  8. 거제시 인구 증가 지역
  9. 거제 부산 연육교 관광
  10. 거제 노자산 가라산 계룡산


일제가 바꿔놓은 거제의 행정 체계

1910년 한일합방, 모든 것이 달라졌다

39년간의 설움, 통영군에 예속되다

군이 사라진다는 것의 의미

조선시대 지방 행정, 마을이 스스로 다스리다

향약 제도로 본 공동체의 지혜

현대 거제시, 자립의 길을 걷다

신현읍 인구 증가가 의미하는 것

1조 원대 장목 관광단지의 꿈

부산-거제 연육교가 바꿀 미래

해금강과 청마의 고향, 문화 관광 도시로

결론 및 FAQ

일제가 바꿔놓은 거제의 행정 체계

거제의 근대 행정 역사는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시기와 함께 시작됩니다. 우리가 원해서 시작된 게 아니었습니다. 강제로 끌려들어간 역사였죠. 거제 지역의 전통적인 행정 체계는 일제에 의해 송두리째 뒤바뀌게 됩니다.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나라가 사라진 날입니다. 그리고 불과 한 달여 뒤인 10월 1일, 일제는 조선총독부 설치령을 공포했습니다. 일제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목, 도호부, 군, 현 같은 행정구역 명칭을 부와 군으로 강제로 통일시켰습니다.

1910년 한일합방,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단순히 이름만 바뀐 게 아니었습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지역의 정체성이 하루아침에 지워진 겁니다. 우리 고유의 행정 체계와 전통이 일본식으로 재편되면서, 조선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에서조차 낯선 제도를 따라야 했습니다.

1913년 10월 1일부터 면장들은 면사무소를 창설하여 업무를 보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지방 행정 체계를 근대화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제로는 식민 통치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말단 행정조직까지 일제의 통제 아래 두려는 의도였죠.

39년간의 설움, 통영군에 예속되다

1914년 3월 1일, 거제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날 중 하나입니다. 부령 제111호로 지방 행정구역이 대대적으로 통합 및 개편되면서 거제군이 육지의 용남군과 통합되어 통영군에 예속된 겁니다. 독립된 군이 사라지고 다른 군의 일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부용의 설움을 거제는 무려 39년간 겪어야 했습니다. 상상해보세요. 자기 이름을 잃고 남의 이름 뒤에 붙어 살아야 하는 상황을. 전국적으로는 97개 군이 폐합되고 1,801개 면이 폐합되는 대규모 감축이 있었는데, 거제도 이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군이 사라진다는 것의 의미

다행히 거제는 9면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고, 서부면이 거제면으로 개칭되었습니다. 1915년 6월 1일에는 경상남도령 제20호 법정리령에 따라 조선시대의 9면 156리가 9면으로 재편되었습니다. 행정구역 수는 대폭 줄었지만, 거제라는 이름만큼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던 거죠.

1917년 10월 1일에는 면제가 제정되고 실시되었습니다. 일제는 식민 통치의 말단 조직을 정비한다는 명목으로 지정면제를 도입했는데, 이는 일본인이 250호 이상 거주하거나 한국인 대 일본인 비율이 3.0% 이상인 24개 면을 지정하는 제도였습니다. 결국 일본인이 많이 사는 지역을 우대하겠다는 차별적 정책이었던 셈입니다.

39년이라는 세월 동안 거제 사람들은 자신들의 군청도 없이, 모든 행정 업무를 위해 통영까지 가야 했습니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통영까지 가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이 39년의 설움은 오늘날까지도 거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조선시대 지방 행정, 마을이 스스로 다스리다

일제강점기 이전, 조선시대의 지방 행정은 어땠을까요? 오늘날과는 상당히 다른 시스템이었습니다. 부, 군, 현이 중앙정부로부터 할당받은 조세액을 면과 동리에 부과하여 거두어들이는 방식이었죠.

당시 조세 제도는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대동세입니다. 쌀과 무명을 공물로 바치던 세금으로, 지금의 농지세에 해당합니다. 둘째, 전세입니다. 논밭을 기준으로 부과하던 세금으로 오늘날의 재산세와 비슷합니다. 셋째, 호포세입니다. 매 가구마다 호별로 걷던 세금으로 현재의 주민세에 해당하죠.

향약 제도로 본 공동체의 지혜

더 흥미로운 건 마을 단위의 자치 조직이었습니다. 촌회라는 마을 공동체 조직이 있었는데, 임기 1년의 마을 임원을 뽑아 운영했습니다. 지금의 이장이나 반장 같은 역할이었죠. 이들은 동사(마을 회관), 도로, 교량, 방천 등을 수리하고 관리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건 향약 제도입니다. 마을 주변 산과 들에 대한 금약을 협약으로 정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나무나 풀을 함부로 베는 것을 금지하고, 공동 작업을 주선하며, 공동 재산을 취득하거나 처분하는 것을 결정했습니다. 심지어 주민들 사이의 사소한 분쟁을 조정하는 역할까지 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수백 년 전에 이미 환경 보호와 공동체 자치, 분쟁 조정 시스템이 마을 단위에서 작동하고 있었다는 게 놀랍지 않나요? 중앙정부의 지시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지켰던 겁니다. 이게 바로 우리 선조들의 공동체 지혜였습니다.

현대 거제시, 자립의 길을 걷다

39년간의 설움을 딛고 거제는 다시 독립된 군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시로 성장합니다. 2001년도 거제시의 예산을 보면 그 발전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초 예산은 총 138,746백만 원(일반회계 122,266백만 원, 특별회계 16,480백만 원)으로 편성되었습니다.

거제시는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후손에게 귀감이 되는 시민을 발굴하여 거제시민상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시상 부문은 교육문화, 체육진흥, 사회복지, 산업경제, 지역개발, 지역안정 등 6개 분야입니다. 한 지역의 정체성은 그 지역을 빛낸 사람들의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법이니까요.

또한 생활이 어려운 주민을 위해 국민기초생활 보장제도를 시행하며 최저 생활 보장 및 자활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만큼이나 복지도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신현읍 인구 증가가 의미하는 것

2000년 기준으로 외국인을 제외한 거제시 인구 변화를 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나타납니다. 신현읍에서 전년 대비 2,021명(3.6%) 증가하여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능포동과 옥포2동에서도 각각 196명, 161명 증가했습니다.

이런 인구 증가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조선소를 중심으로 한 산업 발전이 일자리를 만들어냈고, 그 일자리가 사람들을 끌어모은 겁니다. 신현읍은 거제의 신도심으로 급속히 성장하고 있었던 지역입니다. 반면 장목면은 209명이 감소하며 가장 많이 줄어든 지역으로 나타났습니다. 전통적인 농어촌 지역에서 산업 도시로의 전환이 진행되고 있었던 거죠.

이런 인구 이동은 거제의 도시 구조 자체를 바꿔놓았습니다. 과거 행정 중심지였던 곳들이 쇠퇴하고, 조선소 주변 신도시가 새로운 중심으로 떠올랐습니다. 도시는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계속 변화합니다.

1조 원대 장목 관광단지의 꿈

거제시는 조선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산업이 한 분야에 집중되면 그 산업이 불황을 맞았을 때 지역 경제 전체가 흔들립니다. 그래서 추진한 게 대규모 관광 개발 사업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장목 관광단지 조성사업입니다. 1997년부터 2006년까지 진행될 계획이었던 이 사업은 장목면 구영리, 송진포리 일대 3.3㎢(100만 평)에 관광지, 18홀 골프장, 유보녹지 등을 조성하는 총 1조 3,000억 원 규모의 민자 유치 사업이었습니다.

1조 원이 넘는 규모라니, 상상이 되시나요? 당시 거제시 전체 예산이 1,387억 원 정도였으니, 거의 10배에 가까운 금액이 투입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던 겁니다.

부산-거제 연육교가 바꿀 미래

이 지역이 선정된 이유가 있습니다. 부산-거제 간 연육교의 배후 지역이자, 한려해상의 거점 관광지로 천혜의 자연경관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양 레저 휴양형 리조트로 개발하면 관광객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었죠.

부산-거제 연육교가 왜 중요할까요? 섬이었던 거제가 육지와 직접 연결되면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됩니다. 부산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이런 아름다운 해양 관광지가 생긴다면, 주말 여행객들이 몰려들 게 뻔했습니다. 거제는 섬이라는 고립에서 벗어나 부산 광역권의 일부가 되는 전환점을 맞이한 겁니다.

해금강 마을 일대 관광 개발사업도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추진되었습니다. 집단시설지구 조성 및 진입도로 건설을 목표로 총 400억 원(국비, 도비, 시비, 민자 포함)이 투입되었습니다. 해금강은 거제를 대표하는 명승지입니다. 이곳을 제대로 된 관광지로 개발한다는 건 거제의 미래에 큰 투자를 하는 셈이었습니다.

해금강과 청마의 고향, 문화 관광 도시로

거제시는 자연 관광만이 아니라 문화 자원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거제 출신 예술인 동랑 유치진과 청마 유치환의 문학 혼을 기리고자 2000년부터 2003년까지 둔덕면 방하리 일대에 청마기념관 건립사업이 추진되었습니다.

유치환 시인을 아시나요? "깃발"이라는 시로 유명한 시인입니다. "이 몸이 새가 되어 / 저 하늘 높이 날아 / 구름 속에 잠기어 / 무지개 속에 놀아 / 번개와 벗하여 / 노래하며 살리라" 같은 구절들이 생각나실 겁니다. 거제가 낳은 위대한 문학가를 기리는 기념관을 짓는다는 건 단순히 건물 하나 짓는 게 아닙니다. 거제의 문화적 정체성을 세우는 일입니다.

거제시는 해금강, 학동 동백숲 및 팔색조 도래지 같은 명승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노자산, 가라산, 계룡산, 산방산 등의 명산도 있습니다. 이런 자연 자원에 문화 콘텐츠를 더하면 거제는 단순한 산업도시가 아니라 문화 관광 도시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학동 동백숲은 겨울철 붉은 동백꽃이 만개할 때 정말 장관입니다. 천연기념물 팔색조가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죠. 이런 생태 자원을 잘 보존하면서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게 거제가 가야 할 길입니다.

결론: 설움을 딛고 미래로

거제시 행정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아무리 어려운 시기를 겪어도 포기하지 않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에 군이 폐지되어 39년간 통영군에 예속되었던 설움. 하지만 거제는 다시 독립된 군으로, 그리고 시로 성장했습니다. 조선업으로 세계적인 산업도시가 되었고, 이제는 관광과 문화로 도시의 미래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1조 원대 장목 관광단지, 해금강 개발사업, 청마기념관 건립. 이런 프로젝트들은 거제가 단순히 과거의 영광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조선시대 향약 제도에서 보여준 공동체의 지혜를 이어받아, 현대 거제는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도시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39년의 설움이 있었기에 독립의 소중함을 더 잘 알게 되었고, 그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의 거제가 있는 게 아닐까요? 역사는 과거에 머무는 게 아니라 미래를 위한 교훈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거제군이 통영군에 39년간 예속되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1914년 3월 1일 일제가 부령 제111호로 전국적인 지방 행정구역 통폐합을 단행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전국적으로 97개 군이 폐합되고 1,801개 면이 폐합되는 대규모 감축이 있었습니다. 거제군은 육지의 용남군과 통합되어 통영군에 예속되었습니다. 일제는 효율적인 식민 통치를 위해 행정구역을 대폭 축소했는데, 거제처럼 인구가 적고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가진 곳은 독립된 군으로 유지하기보다 인근 군에 통합시키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 "부용의 설움"은 39년간 계속되었고, 거제 사람들은 모든 행정 업무를 위해 통영까지 가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 경험은 오늘날까지도 거제 사람들의 지역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Q2. 조선시대 향약 제도는 현대 지방자치와 어떻게 다른가요?

조선시대 향약 제도는 마을 단위의 자치 조직으로, 현대 지방자치보다 훨씬 작은 규모에서 작동했습니다. 촌회라는 마을 공동체 조직이 임기 1년의 마을 임원을 선출하고, 동사(마을 회관), 도로, 교량 같은 시설을 수리하고 관리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산과 들의 나무와 풀을 함부로 베지 못하게 하는 금약을 협약으로 정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현대의 환경 보호 규정과 유사합니다. 또한 공동 작업을 주선하고, 공동 재산을 관리하며, 주민 간 분쟁까지 조정했습니다. 현대 지방자치는 법적 권한을 가진 정부 조직이지만, 향약은 주민들의 자발적 합의에 기초한 공동체 규약이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민이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지킨다는 자치의 본질은 같습니다.

Q3. 장목 관광단지 개발이 거제 미래에 왜 중요한가요?

거제는 조선업이라는 단일 산업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업이 호황일 때는 좋지만, 불황이 오면 지역 경제 전체가 위기에 빠집니다. 실제로 2000년대 후반 세계 금융위기 이후 조선업 불황으로 거제는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장목 관광단지 같은 대규모 관광 개발은 산업 구조를 다각화하려는 시도입니다. 1조 3,000억 원 규모의 이 사업은 장목면 일대 3.3㎢에 관광지, 골프장, 리조트를 조성하는 것으로, 부산-거제 연육교 개통으로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점을 활용한 전략입니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가진 거제가 해양 레저 휴양 관광지로 발전하면 조선업 의존도를 낮추고 지속 가능한 경제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관광업은 일자리 창출 효과도 크고 환경 친화적이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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