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완전 정복: 계룡산에서 조선소까지, 섬이 품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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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완전 정복: 계룡산에서 조선소까지, 섬이 품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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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시 포토DB


  1. 거제도 계룡산 등산 코스 추천
  2. 거제 포로수용소 역사 관광
  3. 거제 옥포해전 유적지
  4. 거제도 조선소 산업 관광
  5. 거제 동백꽃 명소 여행
  6. 거제도 팔색조 서식지
  7. 거제 칠천량 해전 역사
  8. 거제도 삼성조선소 견학
  9. 거제 고현항 변천사
  10. 거제도 400년 느티나무

2단계: 글 개요

거제도 완전 정복: 계룡산에서 조선소까지, 섬이 품은 이야기

계룡산이 지켜본 거제의 자연

닭이 알을 품은 산, 계룡산의 전설

평야와 항구로 보는 거제의 지리

신라시대부터 이어진 명진들의 역사

살아있는 생태 박물관, 거제의 동식물

천연기념물 팔색조가 사는 이유

삼한시대부터 조선까지, 거제의 역사적 여정

옥포해전과 칠천량해전, 명암이 엇갈린 바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거제의 아픈 기억

17만 명을 수용한 포로수용소의 진실

세계 최대 조선소가 들어서기까지

매립으로 탄생한 신도시 고현

동백꽃으로 상징되는 거제의 정체성

결론 및 FAQ


계룡산이 지켜본 거제의 자연

거제도 한가운데 우뚝 솟은 계룡산을 아시나요? 높이 566미터의 이 산은 단순한 산이 아닙니다. 멀리서 보면 그 모습이 마치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처럼 보인다고 해서 '비개포란형'이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산 정상 부분은 닭머리를 닮았고, 꼬리 쪽으로 내려가면 용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계룡산이라는 이름이 붙었죠.

이 산은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수도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영적인 장소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금동불상이 발견되기도 했으니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곳입니다. 계룡산은 그저 풍경이 아름다운 등산 코스가 아니라, 거제 사람들의 정신적 중심이자 수백 년 역사를 지켜본 증인인 셈입니다.

닭이 알을 품은 산, 계룡산의 전설

계룡산 주변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오래된 이야기들을 만나게 됩니다. 신라 고승들이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전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숨어 지냈다는 이야기까지. 산 하나에 이렇게 많은 시간의 층위가 쌓여 있다는 게 신기하지 않나요? 등산을 하면서 단순히 자연을 즐기는 것을 넘어, 역사 속 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평야와 항구로 보는 거제의 지리

섬이라고 하면 보통 험준한 산지만 떠올리기 쉬운데, 거제도에는 의외로 넓은 평야 지대가 여러 곳 있습니다. 둔덕들, 동부들, 명진들 같은 곳들은 거제의 곡창지대로 불리며 예로부터 농사가 활발했던 지역입니다. 특히 명진들은 신라시대 행정구역이었던 명진현의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은 곳으로,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죠.

고현들의 경우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이곳에 포로수용소가 설치되면서 평화로운 농경지가 국제적 냉전의 최전선으로 변모했던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같은 땅인데도 시대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 흥미롭지 않나요?

신라시대부터 이어진 명진들의 역사

고현항의 변화는 거제 산업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원래 계룡산과 앵산 자락 사이 좁은 협곡 지역에 있었던 이 항구는 1970년대 이후 대규모 매립을 통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죽도라는 작은 섬을 허물고 바다를 메워 새로운 땅을 만들었죠. 그 위에 삼성조선소가 들어서고 신시가지가 형성되면서 지금의 거제 중심 도시가 탄생한 겁니다.

재미있는 건 가조도라는 섬이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해주면서 천혜의 항구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자연 지형과 인간의 개발이 만나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살아있는 생태 박물관, 거제의 동식물

거제도를 걷다 보면 정말 다양한 생명체들을 만나게 됩니다. 하청면 유계리에는 수령 40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마을의 수호목처럼 서 있습니다. 단순히 오래된 나무가 아니라 400년 동안 그 마을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해 온 살아있는 역사책이나 마찬가지죠.

식물뿐만 아니라 동물 생태계도 풍부합니다. 하천에는 갈겨니 같은 담수어가 살고, 하늘에는 독수리와 검독수리 같은 맹금류가 날아다닙니다. 이런 생물 다양성은 거제의 자연환경이 얼마나 건강한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천연기념물 팔색조가 사는 이유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존재는 바로 팔색조입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희귀한 여름 철새가 거제도에 서식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팔색조는 생태적으로 매우 까다로운 환경을 요구하는 새입니다. 그런 새가 거제에 살고 있다는 건 이곳의 생태계가 그만큼 보존 가치가 높다는 증거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팔색조가 둥지 주변에 쇠똥을 두는 독특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포식자들로부터 둥지를 보호하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추정됩니다. 자연의 지혜가 놀랍지 않나요?

다만 최근 노자산이나 앵산 지역의 식생이 변화하고 있다는 관찰 결과도 있습니다. 해송이 줄어들고 활엽수가 늘어나는 현상인데, 이것이 자연스러운 천이 과정인지 아니면 기후변화의 영향인지는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삼한시대부터 조선까지, 거제의 역사적 여정

거제의 역사는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삼한시대 변진 12국 중 하나였던 독로국이 거제였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이를 주장했고, 일부 학자들은 부산 동래 지역이라고 반박하기도 했죠. 어느 쪽이 맞든, 중요한 건 당시 거제 또는 인근 지역이 해상 교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입니다.

신라시대에는 상군이라는 행정구역으로 편입되었다가 나중에 거제군으로 개편됩니다. 흥미롭게도 통일신라 말기까지 중앙 정부가 정한 아주현이라는 이름 대신 옛 이름인 거로현이 계속 쓰인 기록이 나타납니다. 왜 그랬을까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중앙의 통제력이 완전히 미치지 못했거나, 거제 지역 나름의 독자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서입니다.

고려시대에는 더욱 극적인 역사가 펼쳐집니다. 폐위된 의종 임금이 거제로 유배되어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고, 삼별초 항쟁의 거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14세기 중반부터 약 170년 동안 왜구의 끊임없는 침입을 받으면서 해양 방어의 최전선 역할을 했습니다.

옥포해전과 칠천량해전, 명암이 엇갈린 바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거제의 중요성은 절정에 달합니다. 경상우수영 본영이 거제 가배량(현재 오아포)으로 옮겨오고, 옥포·지세포를 포함해 7개의 진과 보를 설치하는 '거제칠진' 체제가 구축됩니다. 이 바다에서 임진왜란의 향방을 바꾼 두 번의 결정적 해전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는 이순신 장군의 첫 승전인 옥포해전입니다. 조선 수군의 화포는 일본 조총보다 사거리가 훨씬 길었고, 이런 기술적 우위가 승리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5년 뒤, 같은 바다에서 원균 장군이 이끈 조선 수군은 칠천량해전에서 참패를 겪습니다.

같은 장소, 비슷한 무기를 가지고도 왜 이렇게 극과 극의 결과가 나왔을까요? 기술적 우위만으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교훈입니다. 전략, 지휘 체계, 병사들의 사기 같은 요소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거제의 아픈 기억

일제강점기 거제는 경제적 수탈의 최전선이었습니다. 토지조사 사업으로 많은 주민이 삶의 터전을 잃었고, 어업권마저 일본인들에게 넘어갔습니다. 1930년대에는 경작지의 무려 70~80%가 외지인이나 일본인 소유였다고 합니다. 상상하기 힘든 수치죠.

해방은 왔지만 기쁨도 잠시, 분단과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이 거제를 덮쳤습니다. 피난민들이 대거 몰려들었고, 무엇보다 거대한 포로수용소가 설치되면서 거제는 다시 한번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게 됩니다.

17만 명을 수용한 포로수용소의 진실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최대 17만 명의 포로를 수용했습니다. 그 규모만으로도 당시 상황의 참혹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비극은 수용소 내부에서 벌어졌습니다. 친공 포로와 반공 포로 간의 이념 갈등이 폭력적 충돌로 이어졌고, 수용소는 냉전 이데올로기 대립이 가장 첨예하게 폭발하는 현장이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한 건 포로들에게 민주주의 교육을 시키려던 시도가 오히려 갈등을 더 키웠다는 점입니다. 선한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 건 아니라는 역사의 교훈입니다.

1952년 수용소장이었던 도드 준장이 납치된 사건은 국제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수용소 인근 주민 1,100여 세대가 하루아침에 강제로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전쟁의 비극은 포로들만이 아니라 그 지역 주민들에게도 엄청난 고통을 안겼던 것입니다.

결국 자유 송환 원칙으로 포로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개인의 운명이 극적으로 엇갈렸습니다. 이 포로수용소의 기억은 오늘날 거제도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세계 최대 조선소가 들어서기까지

해방 후 거제는 군청 소재지를 두고 고현과 장승포가 경쟁했습니다. 결국 고현으로 결정되었지만, 그 후에도 장승포가 시로 승격하는 등 행정구역은 계속 변화를 겪었습니다. 1995년 두 지역이 통합되어 지금의 거제시가 출범했는데, 이때도 시청 위치를 두고 갈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역 정체성을 둘러싼 고민은 어느 도시나 겪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거제를 정말로 변화시킨 건 행정구역 통합이 아니라 조선업의 등장이었습니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두 거대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거제는 세계적인 조선산업의 중심지로 발돋움했습니다.

매립으로 탄생한 신도시 고현

1970년대부터 시작된 대규모 매립 공사는 거제의 해안선과 지형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자연 해안 대신 거대한 공장과 현대식 도시가 들어섰죠. 이는 엄청난 경제성장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환경 문제와 급격한 사회구조 변화라는 과제도 안겨주었습니다.

1987년 이후에는 노동운동이 활발해졌습니다. 이는 산업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사회적 변화 중 하나입니다. 거대 자본과 수만 명의 노동자가 만나는 곳에서 갈등과 협상, 그리고 새로운 균형점 찾기는 필연적인 과정이었죠.

동백꽃으로 상징되는 거제의 정체성

거제시의 꽃은 동백꽃입니다. 단순히 예쁘다는 이유로 선정된 게 아닙니다. 동백나무는 예로부터 거제 사람들의 삶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혼례상에 동백나무 가지를 올려 신랑 신부의 무병장수와 굳은 약속을 상징했고, 씨앗으로는 기름을 짜서 등불을 밝히거나 머릿기름으로 사용했습니다.

학동 동백림은 거제를 대표하는 명소 중 하나입니다. 겨울에 붉은 동백꽃이 만개하면 그 풍경은 정말 장관입니다. 동백꽃은 거제의 자연환경, 사람들의 생활 문화, 그리고 아름다움을 모두 담고 있는 상징입니다.

거제시의 깃발을 보면 거제의 첫 자음 'ㄱ'을 파도 모양으로 형상화하고, 흰 갈매기와 3개의 파도선을 그려 넣었습니다. 국민의 기상과 화합, 발전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역동적인 해양도시의 이미지가 잘 담겨 있습니다.

시민헌장에서는 정직함, 강직함, 공동체 의식, 개척정신 같은 가치를 강조합니다. 거친 바다와 오랜 역사를 헤쳐온 거제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들이 반영된 것이죠.

결론: 섬 하나에 담긴 한국 현대사

거제도는 단순히 아름다운 관광지가 아닙니다. 계룡산의 영적 전설부터 팔색조가 사는 생태계, 옥포해전과 칠천량해전이 벌어진 역사의 현장, 17만 명을 수용했던 포로수용소, 그리고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소까지. 이 모든 것이 한 섬 안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지정학적으로 늘 중요한 위치에 있었고, 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누구보다 깊게 겪었으며, 세계적 조선업의 흥망성쇠를 온몸으로 경험한 거제도. 이 섬은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거제는 어떤 길을 갈까요? 조선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다각화하면서도 고유의 자연과 역사를 보존할 수 있을까요? 포로수용소의 기억은 오늘날 거제 사람들의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거제도를 더 깊이 이해하는 또 다른 여정이 될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거제도 계룡산 등산은 초보자도 가능한가요?

네, 계룡산은 높이 566미터로 초보자도 충분히 오를 수 있는 산입니다. 여러 등산로가 있어 체력에 맞게 선택할 수 있고, 정상에서는 거제 시내와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습니다. 특히 봄철 산철쭉이 피는 시기와 가을 단풍 시즌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수도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재미도 있습니다. 등산 시간은 약 2~3시간 정도 소요되며, 편안한 등산화와 충분한 물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Q2.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지는 어떻게 관람할 수 있나요?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고현동에 위치해 있으며, 한국전쟁 당시 설치되었던 포로수용소를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습니다. 유적공원 내에는 당시 포로들이 생활했던 막사, 감시초소, 각종 전시관이 있어 냉전시대의 역사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최대 17만 명의 포로가 수용되었던 이곳에서 친공 포로와 반공 포로 간의 갈등, 1952년 도드 준장 납치사건 등 역사적 사건들을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관람 시간은 보통 1~2시간 정도 소요되며,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 더욱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합니다.

Q3. 거제도 조선소 견학은 가능한가요?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은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소로, 일반적으로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다만 특정 기간에 사전 신청을 통해 제한적인 견학이 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조선소 내부 견학이 어렵더라도 고현항 주변이나 전망 좋은 카페에서 거대한 선박 건조 현장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특히 1970년대 매립을 통해 탄생한 신도시 고현의 변천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거제도 조선해양문화관을 방문하면 조선산업의 역사와 기술을 자세히 배울 수 있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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