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월 7일, 조선일보에 ‘26명이 승선한 어선 2대가 실종 10일째’라는 기사가 났습니다. 서해상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 중이던 쌍끌이 어선 오대양 ‘61호’와 ‘62호’가 한꺼번에 사라졌는데, 당시 배에는 장목면 농소리 주민 16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33년 만에 처음으로 납북 어부들의 모습
어로 작업 중, 갑자기 나타난 북한 경비정에 끌려 북한 황해남도 해주시 해주항으로 끌려갔습니다. 뒤늦게 납북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농소마을에 남겨진 가족들은 충격에 빠졌고, 마을은 쑥대밭이 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년 전쯤 납북된 휘영37호에 이어 겹 재앙이 덮쳤고, 주민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과 연좌제의 고통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납북된 한 주민은 “어디 간첩만 나타났다고 하면 우리집 주변에 경찰들이 깔렸다”며, 하소연했습니다. 2005년 조선일보에서 납북 어부들이 북한 당국의 장기간 교육을 받던 중 1974년 북한 묘향산에서 단체로 찍은 기념사진을 입수해 33년 만에 처음으로 납북 어부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느 정권에서도 납북 어부들의 애환을 듣지 않아…
농소마을 주민들은 “사랑하는 가족들이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단식농성도 했으며, 2004년 4월 국가인권위로부터 “정부는 납북자의 생사확인 등을 하라”는 권고를 받아냈지만, 아직 실질적인 생사확인 등의 진전이 없다고 합니다. 한편, 2013년에는 농소마을 출신의 선원 중 1명인 전욱표 님이 탈북해 제3국에 있을 당시, 탈북을 도운 납북자 가족 모임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어느 정권에서도 납북 어부들의 애환을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남북분단의 희생양이 된 납북 어부들은 그렇게 역사 속에서 잊혀 갔습니다.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아픈 역사의 현장에 거제시민들의 고통이 있었던 것입니다.